감찰기관이 감시하는 사회보다 시민이 감시하는 사회
프라이버시 시대는 끝. 개인정보 보호는 자기결정권으로 보아야
앵커링 위험성 보다는 빅데이터 활용에 더 무게를
파놉티콘은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는 뜻의 ‘opticon’을 합성한 것이다. 직역하면 '모두 다 본다'는 뜻이다. 원래는 죄수를 감시할 목적으로 영국의 철학자이자 법학자인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이 1791년 처음으로 설계한 감옥이다. 이 감옥은 중앙의 원형공간에 높은 감시탑을 세우고, 중앙 감시탑 바깥의 원 둘레를 따라 죄수들의 방을 만들도록 설계되었다. 또 중앙의 감시탑은 늘 어둡게 하고, 죄수의 방은 밝게 해 중앙에서 감시하는 감시자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죄수들이 알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이렇게 되면 죄수들은 자신들이 늘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고, 결국은 죄수들이 규율과 감시를 내면화해서 스스로를 감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SNS나 온라인 공간을 파놉티콘에 비유를 많이 한다.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개개인의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당할 수 있다는 것으로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소설 『1984년』에서 보여준 빅브라더(big brother) 시대가 도래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주커버그는 “2004년, 내가 하버드 대학 기숙사에서 아이비리그 대학생을 대상으로 페이스북을 만들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왜 인터넷에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더 많은 개인정보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데 편안함을 느낀다. 개인적 프라이버시 문제는 더 이상 사회적 규범이 아니다. 프라이버시 시대는 끝났다”라고 공언했다.
더글러스 러시코프(Douglas Rushkoff)는 “돈을 내지 않고 사용한다면 당신이 상품이다”라고 말했다. 처음에 사람들은 자신의 사적 정보가 조금 희생되더라도 달콤한 공짜의 유혹을 포기할 수 없었다. 소위 학계에서 말하는 프라이버시 계산(자신의 프라이버시를 희생하는 댓가로 얻게 되는 편익과 위험을 비교해)을 통해 해당 서비스를 사용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전 CIA요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은 2013년 가디언지를 통해 미국과 영국의 안보국이 전 세계 일반인들의 통화기록과 인터넷 사용정보 등의 개인 정보를 수집 사찰해온 사실을 폭로했다. 정부의 대규모 사찰이 가능해진 배경에는 사용자들이 공짜 서비스를 사용하며 제공하는 데이터들이 그 중심에 있었다. 트리스토퍼 CIA 부국장은 “몇 년 동안 대중을 몰래 감시한 우리로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거주지와 종교, 정치적 견해, 순서대로 정리한 친구 목록, 이 메일 주소, 전화번호, 자신이 찍힌 수백장의 사진, 현재 활동 정보를 공개하니 놀랍다. CIA로서는 정말 꿈에 그리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시놉티콘은 파놉티콘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감시에 대한 역감시란 의미이다. 시놉티콘은 파놉티콘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으로 사이버 세상이 열리면서 일방적 감시가 아닌 상호감시가 가능한 시대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즉, 현대 사회는 인터넷의 발달, 활발한 시민운동 등으로 인한 정보사회로 접어들면서 파놉티콘의 일방적 감시가 시놉티콘으로 바뀌고 있다. 즉, 과거처럼 소수만이 권력과 언론을 독점하고 다수의 일반 시민을 통제하는 체제가 아니라 일반 시민들 역시 자신들을 감시하는 권력자를 감시하고 통제한다는 것이다.
노르웨이 범죄학자 토마스 매티슨은 언론과 통신을 통해 다수가 소수의 권력자를 감시할 수 있는 체제로 발달했다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권력 감시를 시놉티콘이라 이름 붙였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비판적인 의식의 교류, 부정적인 현실의 고발, 중요사안에 관한 의견 결합 등 네티즌들의 조사로 권력자들을 감시하는 역발상 체제가 바로 이것에 해당한다. 시놉티콘에 크게 기여한 것은 바로 인터넷의 익명성이다. 권력자에게 쉽게 말할 수 없는 내용들을 서로 익명 체제하에 교류하고 투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일년전 메신저 서비스인 카카오톡을 통해 검찰이 수색영장을 받은 개인의 사적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는 것이 언론을 통해 밝혀졌다. 그 여파로 유저들이 독일산 메신저인 텔레그램(Telegram)으로 이동하는 '사이버망명'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반 메신저도 검열 대상이라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사이버망명 소동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감찰기관의 감시 기능과 이를 싫어하는 시민 사회의 갭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미국과 선진국들은 테러방지법 제정을 통해 SNS 및 온라인 공간의 감찰 기능을 강화하고 사전정보를 취득하여 테러 및 국가 위협을 최소화 하고 있다. 이와 반면 한국은 범죄자로 추정되는 인물 조차도 온라인을 통한 감찰이나 감시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개인정보 침해 가능성과 공공의 안전성은 한동안 논쟁이 불가필 할 것으로 보여진다.
개인정보를 연결하는 행위를 앵커링(Anchoring)이라고 한다. 사람이 움직이는 모든 것에서 정보가 발생한다. 지하철, 버스, 거리 CCTV, 차량용 블랙박스, 신용카드 결제, 네이버 및 구글 검색 및 조회 등 보고, 타고, 쓰고, 이용하는 모든 것들이 정보가 되어 하나씩 쌓이고 있다. 지금시대는 바로 개인과 관련된 모든 정보가 수집되고 쌓이는 빅데이터 시대인 것이다. 앵커링은 이질적인 정보를 갖고 한 사람을 파악하는 일 또는 특정 정보를 연결시켜 특정인의 정보를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빅데이터 수집이나 분석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앵커링을 통한 개인정보 침해를 이유로 들고 있다.
에드워드 스노든은 '사회가 발전하면서 프라이버시에 대한 관점도 변화하고 있다. 외부의 간섭이나 침해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혼자 있을 수 있는 권리가 고전적 관점에서 프라이버시의 정의였다면, 요즈음처럼 정보기술이 발달하고 많은 사람들이 어울려 복잡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현대사회에서는 오히려 개인정보에 대한 자기 결정권의 관점에서 보는 편이 더욱 맞는 정의'일 것이라고 말한다.
현대 사회의 방대한 빅데이터는 사회경제적으로 아주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다. 빅데이터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부문에 있어서 개인정보 침해의 위험성 관점보다는 사회발전과 공공의 이익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부 감찰기관이 범죄자를 감시하는 파놉티콘의 사회가 아닌 빅데이터를 안전하게 활용하고 시민이 상호 감시하는 시놉티콘의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하겠다.
안병익 주식회사 씨온 대표
국내 위치기반 소셜기술 및 O2O 전문가다. 연세대 컴퓨터과학 박사로 KT 연구원으로 재직하다가 1998년 사내벤처를 시작으로 2000년 LBS기업 ‘포인트아이’를 창업했고, 2010년 위치기반SNS 기업 ‘씨온’을 창업해 맛집정보 앱 ‘식신’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건국대학교 정보통신대학원 겸임교수와 한국LBS산업협회 및 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전자신문, 2016.02.11, 안병익 대표님)